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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상-신의 숨결] 우리말에서 듣는 하늘의 소리 ③ 이기상 [email protected]

말은 하느님의 소리

다석 사상의 뛰어남 가운데 하나는 그 동안 언문, 암글이라고 무시되고 천시 받아 온 <한글>로서 학문할 수 있고 철학할 수 있음을, 아니 철학해야 함을 보여준 데 있다. 다석은 우리말 속에서 말 건네 오고 있는 하느님의 소리를 듣는다고 믿었으며, 바로 우리말 속에 우리의 독특한 삶의 방식, 사유방식, 철학이 들어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말을 보이게 하면 글이고, 글을 들리게 하면 말이다. 말이 글이요, 글이 말이다. 하느님의 뜻을 담는 신기(神器)요 제기(祭器)이다. 하느님의 마루뜻[宗旨]을 나타내자는 말이요, 하느님을 그리는 뜻[思慕]을 나타내자는 글이다. “이렇게 몇 자가 분열식을 하면 이 속에 갖출 것 다 갖춘 것 같아요, 말이란 정말 이상한 것입니다. 우리말도 정말 이렇게 되어야 좋은 문학, 좋은 철학이 나오지 지금같이 남에게(외국어) 얻어온 것 가지고는 아무 것도 안 돼요. 글자 한자에 철학개론 한 권이 들어 있고 말 한 마디에 영원한 진리가 숨겨져 있어요.”⑴

▲ 신영복 선생의 서화 (사진출처=사단법인 더불어숲)

▲ 신영복 선생의 서화 (사진출처=사단법인 더불어숲)

우리의 한글은 하느님의 계시로 이루어진 글이다. 사람만이 만들어 낸 말과 글은 어느 말이나, 어느 글이나 하느님의 계시로 안 된 것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 말이 생긴 것은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려는 사람의 기도에서 얻은 산물이다. 글은 하느님의 뜻을 세상에 알리는 도구이다. 그러므로 글은 진리를 통해야 한다.

다석은 우리의 한글도 한자와 다름없는 뜻 글자의 구실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세종 임금이 한글을 지을 때 자연의 원리에 입각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모음 자음이 나름대로의 뜻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한글의 자음은 입(목구멍·입천장·혀·입술·이)의 모양을 본떠 만들고 음의 강도에 따라 삼단계화 하였다. 한글의 모음은 · (天), ㅡ(地), ㅣ(人)을 으뜸으로 하여 만든 것이다. <·>음은 아오(AU, AO)로 읽는다. 본디는 원음(原音)으로 아기가 옹알이 할 때 처음 내는 소리다. 벙어리가 분화되지 못한 소리를 내는 것도 · 음이다. 원음이 수직으로 내려 사람인 <ㅣ>가 되고, 원음이 수평으로 건너가 땅인 <ㅡ>가 되었다. 원음 · 이 사람(ㅣ) 뒤에 가 <ㅏ(아)>가 되고, 원음 · 이 사람(ㅣ) 앞에 와 <ㅓ(어)>가 된다. · 가 땅인 ㅡ 위에 가서 <ㅗ(오)>가 되고 ㅡ 아래에 와 <ㅜ(우)>가 된다.⑵

원음인 <·>는 빈탕한데에 점 하나를 찍은 형상이다. 그것은 텅빈 무에서 이제 무엇인가 생겨나오는 존재생기, 우주발생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야말로 무에서 유가 발생돼 나오는 태초의 시작을 감탄하며 <·(아)>라고 외치는 형상이다. 다석은 <아침>도 그러한 의미로 풀이하여 아침은 <아 처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이 태초의 <·>에서 계속 발생되어 나오는 우주의 생성은 그 전체를 가늠할 수 없는 무한한 <하나>로서 다름 아닌 <한 ·>, 즉 <한아>인 것이다. 이렇게 천·지·인이 아우러져 하나로 포개지는 우주적인 사건을 우리말의 구조가 담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훈민정음』에 담긴 우주관

우리글 제작의 대원칙. 그것은 정인지 등 집현전 학사들이 세종대왕의 명을 받고 저술한 『훈민정음』의 <글자 지은 풀이[制字解]>에 이렇게 씌어 있다.

“하늘과 땅의 이치는 하나의 음양(陰陽)과 오행(五行)뿐이다. 곤(坤)괘와 복(復)괘의 사이가 태극이 되고 움직이고 고요한 후에 음양이 된다. 무릇 생명을 지닌 무리로서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자 음양을 두고 어디로 가랴. 그러므로 사람의 목소리도 다 음양의 이치가 있건마는 도리어 사람이 살피지 못할 뿐이다. 이제 정음 지으신 것도 애초에 꾀로 일삼고 힘으로 찾아낸 것이 아니라, 다만 그 목소리에 따라 그 이치를 다하였을 뿐이다. 이치가 이미 둘이 아닌즉 어찌 천지 귀신으로 더불어 그 용(用)을 같이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정음 28자도 각각 그 형상을 본떠서 만들었다.”⑶

“첫소리 17자의 제자 원리는 다름 아닌 태극과 음양과 삼재와 오행의 원리이며, 이 이치에 의하여 구강(口腔) 안의 발음 부위를 다섯 부위로 나누고, 각각 그 발음 기관의 형상을 본떠서 그것을 기본형으로 삼고, 소리의 변화에 따라 획을 더하여 부위마다 세 층씩을 만든 것이라 하겠다.”⑷

‘·’, ‘ㅡ’, ‘ㅣ’ 세 소리는 천지인(天地人) 삼재의 원리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니, 이것을 자세히 살펴보면 ‘·’는 태극이요, ‘ㅡ’와 ‘ㅣ’는 양의(兩儀)이기도 하다. 즉, 주역에 이른바 ‘태극이 양의를 낳았다’는 것이 이 삼재 원리의 바탕이 되는 동시에, 훈민정음의 모든 가운뎃소리는 그 첫소리의 경우와 같이 모두 태극과 음양의 원리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을 알 수 있다.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