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십개의 시계들이 각자의 시간 속을 달리고 있다. Unsplash
건대 먹자골목에서 오랜만에 회포를 푼 친구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건대입구 역 3번 출구를 향해 걸었다.
버스킹을 하나보다. 그런데 가사가... 가사가...???
"내가 지금부터 공부해서 사법고시를 붙어도 널 이길 수는 없겠지. 호봉이 네가 높잖아?
가수가 판검사를 어떻게 이겨? 내가 장기하를 이겨도 내가 이승기를 이겨도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는 걸.
가수가 판검사를 어떻게 이겨? 뮤직 뱅크 1위를 해도, 연말 가요 대상을 타도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는 걸. ... 친구라도 될 걸 그랬어."
-벽 (강백수)-
세상에... 뭐지? 사법고시에 붙은 여친을 떠나보내는 노래를 절절하게 부른다. 적지 않은 사람들 둘레에 끼여서 우리도 그의 노래를 듣는다. 역시 가사가 남다르다. 진솔하다. 재밌다. 약간은 장난기도 있다.
그는 자신을 강백수라고 소개했다. 전혀 몰랐던 뮤지션이다. 홍대에 있을 법한 사람이 건대에서 버스킹을 한다. 목소리가 시원시원하다. 기타도 잘 친다. 무엇보다 고음 샤우트가 장난이 아니다. 신기한 마음에 친구랑 멜론을 뒤졌다. 어? 음원이 있다!
그렇게 집 가는 것도 잊고 그의 노래에 푹 빠져있는데 갑자기 가슴 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온다.
"어느날 타임머신이 발명된다면 1999년으로 날아가 아직 건강하던 30대의 우리 엄마를 만나 이 말만은 전할 거야.
엄마, 우리 걱정만 하고 살지 말고 엄마도 몸 좀 챙기면서 살아요. 병원도 좀 자주 가고 맛있는 것도 사먹고. 이 말만은 전할 거야.
2004년도에 엄마를 떠나보낸 우리들은 엄마가 너무 그리워요. 엄머가 좋아하는 오뎅이나 쫄면을 먹을 때마다 내 가슴은 무너져요. ...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돌아가 엄마를 만날 수는 없겠지만 지금도 거실에서 웅크린 채 새우잠을 주무시는 아버지께 잘해야지."
1993년에 아빠를 떠나보낸 나는, 아빠의 20주년 기일이 몇 달 안 남은 그 무렵 나는 그냥 무덤덤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그의 노래를 듣는 순간,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아빠가 너무 너무 그리웠다. 그냥 삶의 다른 것들로 덮고 있었을 뿐.
엄마를 떠나보낸 그가 엄마를 자신의 노래에 담는다. 마치 스쳐 지나갈 찰나의 순간을 오래 간직하기 위해 사진으로 남겨두듯이... 그리고 얼마인지도 모를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며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돌아가고 싶게 만들었다. 기교와 퍼포먼스보다 더 빛나는 진솔한 가사와 노래로 자신의 마음을 담아낸 음악은 이렇듯 많은 사람의 마음을 깊이 울린다.
울었다. 길거리에서. 친구 녀석도 그런 내 어깨에 손을 얹는다. 집에 어떻게 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때의 기억이 시간 저편에서 사그라들때 쯤 그는 다시 타임머신을 리부트하여 10년 전 내 기억을 소환한다. 그는 10년 후 오늘로 돌아올 타임머신을 준비해 둔 듯했다. 마치 언제나 거기 있어주는 순댓국집처럼, 그도 단골들을 부른다, 리부트된 타임머신을 타고 10년 전 그날로 함께 날아가자고.
나는 언제 출발할지 달력을 꺼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