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bodnara.co.kr/bbs/article.html?num=75278

IT사업을 하고싶으면 미국에 가서 하라

최근 정부와 언론, 사회지도층들이 아이폰 출시 이후의 한국사회의 변화에 대해 진단하면서 몇가지 공통적인 문제점(?)들을 제시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이제는 단순한 하드웨어 판매에서 벗어나 솔루션을 판매해야 한다는 것이나, 왜 한국에서는 스티브잡스같은 사람이 나올 수 없냐면서, 한국의 스티브잡스를 육성해야 한다는 것 (당연하지..스티브 잡스가 한국에서 태어나 똑같은 일생을 살았다면 평생 괴짜소리나 들었을 것을...) 등 아이폰으로 인한 패러다임 시프트는 이미 한국사회에 충분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어제는 무릎팍도사를 통해 네티즌 팬을 꽤 많이 확보하신 KAIST 안철수교수가 CBS와의 인터뷰를 통해 '실패한 사람이 재기할 수 없는 사회구조가 가장 큰 문제' 라고 언급한 바도 있다. 물론 그 말도 맞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인 국내 시장이 기술과 실력을 갖춘 중소 기업이 자생하기에는 너무 작다는 점을 너무 간과하고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한국시장은 미국이나 여타시장보다 너무 작아,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혹은 열정 하나만으로 성공하기에는 실리콘밸리보다 10배는 더 힘들다. 똑같은 사람이 똑같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노력을 했을때 실리콘밸리와 비교해 한국에선 실패할 확률이 훨씬 높다. 기본적으로 시장이 10배 이상 작고, 강점이었던 제조경쟁력 역시 중국에 선두를 빼앗기고 있어 내세울 만한 강점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도 아이폰같은 혁신적 제품을 갖고 있었다

아이폰으로 시작되는 스마트폰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현재는 찬밥대우를 받는 MS의 Windows Mobile을 거론할 수 있을 것이며, 혹자는 스티븐 시갈의 Under Siege 2 에 잠깐 등장한 Apple의 실패작 Newton PDA를 떠올릴 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더 거슬러 올라가면 대중화에 성공한 최초의 PDA인 Palm Pilot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스마트폰/PDA의 계보에 하나를 더 끼워넣고 싶다. Palm Pilot과 당당히 경쟁했던 순수 국산 OS와 국내산 설계의 하드웨어를 탑재한 CellVic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놀랍지 않은가? 아이폰에 박살난 삼성의 옴니아2를 보며, 우리는 왜 아이폰을 만들지 못하는가에 대해 열심히 토론하며 한국의 스티브 잡스를 육성하기 위한 예산 집행 정책을 마련하겠다는 안드로메다성 발언이 쏟아지고 있는데, 이미 우리는 10년 전인 1999년 CellVic이라는 순수 국산 OS를 탑재한 PDA를 이미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10년전 CellVic, 현재의 아이폰 비슷한 구석 많아

물론 순수한 창작형 제품은 아니었다. Palm Pilot을 벤치마킹 하여 제작된 이 제품은 애플이 아이폰에 자체 OS인 아이폰 OS를 탑재했듯, 순수 자체 OS인 CellVic OS를 탑재해 제자체적인 생태계를 가진 제품이었다.

여기에 메일이나 연락처 등의 PIMS 소프트웨어를 기본적으로 탑재했음은 물론, 자체 개발한 스프레드시트와 워드 프로그램도 기본으로 제공됐다. 당시 CellVic OS는 당시 기준으로 경쟁사 제품보다 더욱 직관적인 인터페이스와 완벽한 한글 지원, 빠른 반응속도로 높은 완성도를 자랑했으며, 개발자들을 위한 자체 SDK키트를 이미 보유하고 있음은 물론 1년에 4회 개발자 콘테스트를 개최해 개발자를 위한 다양한 마케팅적 활동도 소홀하지 않았다.

이런 노력으로 요즘 아이폰용 앱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는 '서울버스'나 '지하철' 프로그램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실생활형 어플리케이션이 다수 등장했으며, 지하철을 몇 번 칸에 탑승하여야 원하는 목적지의 출구에 빨리 갈 수 있을까 하는 프로그램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당시엔 GPS기술이 대중화되지 않았으니 이 정도 수준의 어플리케이션이 주는 충격은 요즘의 '서울버스'가 주는 충격보다 더 크다) 이렇게 사용자들이 편의를 위해, 필요에 의해 제작한 프로그램들이 이미 10년 전에 국내에 존재했다.

PDA를 벗어나 스마트폰으로 진화하려 한 CellVic

이 진화 과정도 상당히 재미있다. CellVic은 초기에 Palm Pilot 이나 Windows Mobile같은 형태의 PDA형태로 개발되어 오다, 2001년 SKT의 CDMA 모듈 (2G)을 탑재한 스마트폰 CellVic XG로 등장하기도 했다. 오히려 이러한 시도는 당시 경쟁사인 Palm Pilot이나 Windows Mobile보다 훨씬 앞선 정책이었다.

애플이 개척한 아이팟 -> 아이폰의 길을 10년 전에 이미 그것도 미국도 아닌 변방의 한국 시장에선 이미 진행된 아이템이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못하는 게 아니라, 못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단지 시장이 작았을 뿐이고, 사업수완이 모자랐을 뿐이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없었을 뿐이었다.

위기에 몰리던 CellVic의 비즈니스는 결국 코오롱에 인수되어 비즈니스를 계속 하였으나, 2004년 코오롱에서 완전 철수를 선언함으로써 국산 PDA의 역사는 여기서 종지부를 찍게된다. 역사에 만약이라는 단어는 절대 쓰지 않는 것이 맞으나, CellVic이 조금만 더 사업수완이 좋았더라면, 4 ~ 5년만 더 비즈니스를 유지할 수 있었더라면 지금의 이 스마트폰 대호황의 시기에 10년의 전통을 가진 완벽한 국산 스마트폰으로 아이폰과 당당하게 겨룰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이는 CellVic이 당시 어떠한 점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었는가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CellVic은 그 OS의 구조가 아주 가벼웠으며, 빠른 반응속도를 가지고 있었고,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다. 여기에 경쟁사 제품과 비교해 반값도 되지 않는 아주 저렴한 가격을 가지고 있었음은 물론, 외국 회사들이 절대 제공해주지 못하는 한국어 사용자에게 최적화된 다양한 소프트웨어와 한글 필기인식기능 등의 특화된 기능에서 단연 절대 강자였다.

2000년대 초반의 한국사회는 PC의 시대라고 할만큼의 폭팔적으로 PC시장이 성장하던 시기였다. 스마트폰, 혹은 PDA라는 것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시점이었고, 무선네트워크 개념도 없어 대중화되기 어려운 아이템이었다. 여기에 글로벌 비즈니스에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좁디 좁은 국내시장에 한정되어 스스로 개척해야 했던 점 등이 분명 부담이었으리라 본다.

때를 잘못 만난 한국의 스마트폰 개척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