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는 "씨앗"의 역사를 간단하게 정리해 보겠다. 글을 쓰면서 왠지 안타깝고 무거워지는 마음을 어찌할 수 없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과 같이 '씨앗'은 기존에 만들어진 '한베'나 "하늘소"의 '이야기' 스크립트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무척 고품격의 한글 프로그래밍 언어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눔기술'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으므로, 1994년 4월 28일에, 정식판이 발매되기 훨씬 전인 1993년 말부터 "하이텔"의 "큰틀", "한글 프로그래밍 동호회"에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나를 비롯한 여러 분들의 노력으로 "씨앗마을 - 한글 프로그래밍 언어"(KPL)라는 동호회를 결성하기에 이른다.

우리는 하이텔의 KPL을 바탕으로 "씨앗 사용자 모임"을 결성했고, 나우누리에도 "씨앗길"이라는 사용자 모임이 결성되기에 이른다. 결국 하이텔과 나우누리의 사용자 모임은 연대하여 활동했고, "나눔기술"에 여러 가지 압력(?)을 가하여, 자칫 흐트러질 지도 모라는 "나눔기술"을 채큰했다.

그 결과 "나눔기술"은 "향상 기본 단원 1.01"판을 발매하여 기본 라이브러리의 버그를 잡고 '마우스'와 '사건'(event) 단원을 추가하였으며, 씨앗 라이브러리를 개발할 때 사용했던 "한모셈"이라는 자체 어셈블러와 보호모드(protected mode)용 링커, "마우스"를 지원하는 "태극 3.1" 등 기본 환경을 개선하였다.

이와 함께 ISAM 방식으로 파일을 처리하여 DB 프로그램을 작성할 수 있는 "색인순차" 단원, 화면에 각종 서식(form)을 출력하고 값을 입력받을 수 있는 "화면입출" 단원, 고급 그래픽 기능을 제공하는 "그림" 단원, 시리얼 포트를 제어할 수 있는 "직렬통신" 단원 등 추가적인 라이브러리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사용자들의 활동으로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하이텔과 나우누리의 동호회를 중심으로 정기모임 및 번개를 가졌고, 가끔씩 "나눔기술"의 초대를 받아 사옥을 견학하기도 하고, 씨앗 개발진을 만나보고 질의 응답 시간을 갖기도 했다.

나를 비롯하여, 씨앗의 선구자이신 여러 분들은 초보자를 위하여 각종 강좌와 예제를 만들었으며, 나는 "프로그램세계' 잡지에 6회에 걸쳐 씨앗 소개 연재를 내기도 했다.

"이야기" 프로그램의 접속 로그를 이용하여 통신용 전화 요금 계산 프로그램인 "하나로"를 만드는 "온라인 프로젝트"가 진행되기도 하였다.

C언어에서 잔뼈가 굵은 분들이 씨앗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한모셈을 이용한 어셈블러 강좌, DOS의 인터럽트를 사용한 시스템 프로그래밍 강좌 등 고급 강좌가 속속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눔기술"에서도 (사용자 모임의 압력을 받아 마지못해 하기는 했지만) "파일 입출력 강좌"나 "한글 환경 태극 강좌" 등을 올려가며, 나름대로 씨앗 환경 조성에 일조했다.

"씨앗" 평가판의 기능 제한을 완화하여 줄 것을 건의하여, "맛보기판"(평가판2)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패키지를 내게 했으며, 이 기본적인 공개용 통합환경을 가지고 "씨앗 경진대회"를 하자는 요구도 끊임없이 "나눔기술"에 대하여 이루어졌다.

그러나 "Windows 95"가 발매되고, "나눔기술"이 "한글과컴퓨터"와 기술제휴를 하면서, "워크플로우"라는 새로운 사업에 매진하기 시작했고, 차츰 "씨앗 개발팀"의 인원은 축소되기에 이르렀다.

씨앗의 창조자이며, 모든 것의 총 책임자인 박석봉 님을 뵙고싶었으나 휴가, 출장 등의 이유로 결국 "나눔기술"에서 보지 못했고, 마침내 "박석봉 님의 '나눔기술' 퇴사"라는 비보를 접하기에 이르른다.

1996년 1월, 드디어 "나눔기술"은 "씨앗 개발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하고, "향상기본단원 1.01판"을 포함한 "씨앗 1.00 정식판"을 사용자들에게 완전히 무료로 공개하기에 이른다.

씨앗 컴파일러와 통합환경, 한글환경 태극 등 일체의 소스는 "씨앗마을"에 넘겨졌지만 아쉽게도 소스의 모든 저작권은 아직도 "나눔기술"이 가지고 있으므로, 소스 자체의 유출은 불가능했었다.

또, 그 당시 나를 비롯한 동호회의 운영진들의 실력으로는 컴파일러나 통합환경, 태극 등의 소스코드를 해석할 능력도 없었다. 아니, 보다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저작권이 "나눔기술"에 있는 상태에서, '소스'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 자신이 없었다.

마음 속 깊이 씨앗을 사랑했지만, 그 환경을 계량하기에는 나의 역량도 부족했고, 소스코드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도 너무나 무거운 일이었다.